<박서림의 從心漫筆>

                                   

  


<박서림의 從心漫筆>(25)   <집념의 작가 李恩成>

 

 

       「집념의 작가 李恩成」

 

                                                                                                         박서림

    

        <이은성 작가>

 

"작품 참 좋아요! 가족들이 함께 보며 눈물을 흘리네"

벌써 30년도 넘었는가? 이은성씨의 연속극 「집념」을 보고 나서 이런 내용의 전화를 걸었었다.

내 평생 남의 작품보고 이런 전화를 건 상대는 몇 사람 안 된다.

그야, 야, 자 하는 친구들의 작품이야 좋네 나쁘네 마구, 평가하지만 그런 경우에도 대포 집 같은 데서 술 마시며 그랬지. 즉석에서 전화 건 일은 거의 없었다.

당시 이은성씨와는 그저 작가실에서 만나면 인사나 할 정도였다.

이은성 작가 후에 한때 함께 火曜會 멤버가 되기는 했지만 그 때까지만 해도 친숙했던 편은 아니었다. 그런 그에게 그런 전화를 건 것은 그만큼 그를 인정한 뜻이 된다. 그만큼 「집념」은 좋은 작품이었다. 「집념」뿐만 아니라 그의 작품은 모두 좋았다. 나만 그를 인정한 것이 아니다.

전 KBS 이사장 노정팔 저 <한국방송과 50년>에서 인용한다.

" KBS가 자랑으로 내세울 만한 드라마는 73년 2월 5일부터 막을 올린 이은성 작 이정훈 연출의 <세종대왕> (世宗大王)이었다.

전혀 상업성에 물들지도 않고 시청자를 의식하지도 않았다. 세종의 성격, 세종의 인덕, 양녕대군의 활달한 모습 등을 진실하게 모사하여 역사극의 진수를 맛보게 해 주었다.

200회 계속된 이 연속극은 수준 높은 작품으로 지식층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이은성씨는 그 동안 <성춘향>을 비롯하여 「동의보감」을 쓴 허준의 일대기를 그린 <執念> , 고려의 멸망과 조선조의 건국을 그린 <개국>, 일제하와 6.25라는 격동기를 슬기롭게 살아가는 여인의 일대기를 그린 <여심> 등 품격 있는 작품을 많이 썼는데 그만 애석하게도 88년 젊은 나이로 타계하고 말았다."

<한국 방송작가협회 50년>에 수록된 「작고작가 회고」에 보면 협회 전 이사장 이희우씨 와 절친했던 모양이다. 親友의 죽음을 애석해 하는 그의 글을 여기에 그대로 옮긴다.

 

* * *

 

   심장으로 작품을 쓴 옹고집

                                                         이희우

대형.

은성이 형은 심장으로 글을 썼다.

탱크로 굴러가듯 쿠룽쿠룽 힘찬 소리를 내며 심장으로 글을 썼다.

그토록 심장을 혹사 시키더니 결국 심장에 병이 생겨 그야말로 홀연히 허망하게 수술실에서 떠났다.

형은 결코 손끝으로 글을 쓰지 않았다. 항상 심장으로 들이댔고 그래서 작품 기획부터 심장을 들이대야 성립될 수 있는 주제와 소재를 선택하였다.

1966년 공보부 주최 시나리오 공모에서 「칼 맑스의 제자들」이 당선되었고 이듬해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나리오부문에서 [녹슨 선(線)」이 당선되어 그 후 많은 영화작품을 남겼으며 1969년에는 제15회 아시아 영화제에서 「당신」으로 최우수 각본상을 수상하였다.

텔레비전 극본 집필은 1972년 MBC에서 「대원군」으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였다.

서두에 탱크가 굴러가듯 이라고 한 것처럼 형은 육척거구였다. 작가실 작은 책상에서 작업을 하는 뒷모습을 보면 책상 앞에 앉았다기보다 책상을 끌어안고 있는 듯했다.

그 누구도 수정한다는 것은 꿈도 꾸지 못했다. 비록 그것이 토씨 하나의 수정이라도 반드시 허락을 받아야지 임의로는 어림없었다. 이런 고집의 자신감은 어떻게 나오는 것인가.

우리 작업이라는 게 시간에 쫓기기 일쑤여서 매수 채우기 급급할 때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은성형은 언제나 넘치게 썼다. 넘쳐도 어느 정도가 아니라 120매가 필요한 60분 물을 보통 150 ~160매 썼다. 항상 쓸 것이 많았고 욕심이 많았다. 철철 넘치는 상태에서 압축작업(추고)방법이 특이했다. 그래서 청색연필로 지우기부터 하는 것이다. 어떤 장은 (200자 원고지) 다 지워지고 반줄 정도 남기도 한다. 그렇게 지우는 작업이 끝나고 나면 이번에는 절대량이 부족하게 된다.

그야말로 투쟁과도 같은 각고의 작업으로 「명인백선」「세종대왕」「강감찬」「충의」「거상 임상옥」「집념」「의친왕」「등신불」「광대가」「고선자 김정호」 「토정 이지함」「동리 신재효」「개국」「정선 아라리」「여심」등의 작품이 탄생하였다.

허구헌 날 밀물처럼 몰려드는 원고와 싸우다 보니 스트레스 축적이 이만 저만이 아닌데 별다른 취미생활이 없다 보니 푸는 방법은 오직 술이었다. 은성이 형과 나는 참으로 징그럽게 마셔 댔다. 원고가 잘 써지지 않았고, 급한 일이 끝났다고 마셨고 좋은 친구(작가)들이 모였다고 술집으로 달려갔다.

낮이고 밤이고 없었다. 그 당시 여의도에서는 카페같은 곳에서 밴드를 불러 노래를 할 수 있었다. 형의 18번은 <한 오백년> 이었다. 눈을 지긋이 감고 목청을 가다듬어 불러 제치면 가수 조용필이 부르는 것보다도 구구절절 더 한이 맺혀 있어 가슴을 쳤다. 무슨 한이 그토록 절절하게 맺혀 있었을까?

이에 대해 피차 얘길 나눈 바는 없었지만 나는 이유를 알고 있었다. 대쪽처럼 살아온 자신의 작가관을 지킬 수 없는 한이었다. 생활 때문이었다고 단정짓고 싶지는 않지만 그 무렵 홈드라마 일일연속극도 썼다. 이상하게 풀리는 듯한 자신을 모질게 추스르지 못하여 안타까워했다.

여의도에서 여러 사람과 어울려 술을 마시는 것도 싫어했다. 우린 집이 방향이 같았다. 그래서 우리 두 사람은 일이 끝나면 마치 여의도 피해자들처럼 섬을 벗어났다. 그 후 2년 여 신촌바닥에서 거의 단 둘이만 술을 마셔댔다.

형은 드디어 자신을 추슬렀다. 서울올림픽 기념특집극 「아리랑」을 KBS와 계약을 하고 자신감 넘치는 예전의 모습을 찾았다.

"희우씨, 우리 그 동안 술 너무 마셨어. 내 이번에 작품 하나 만들어 낼게!."

「아리랑」집필을 시작하자마자 1988년 1월 30일 수술실에서, 모든 방송인들이 아까워하는 고집스럽고 뚸어난 방송작가 한 사람이 영영 사라졌다.

그러나 인성형은 그냥 사라지지 않았다. 사람은 죽어서 이름은 남기고 범은 죽어서 가죽을 남긴다고 했는데 형은 두 가지를 남겼다.

형은 연속극 「집념」을 「소설 동의보감」으로 다시 써서 수밴만 부가 팔리는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어 가족을 지켰다. 유난히도 가족을 사랑했던 은성형이 그립다.

 

* * *

 

사적인 출생이나 성장과정 등 데뷔 이전의 그의 경력이 궁금하지만 절친했던 이희우씨 조차 밝히지 않고 있으니 궁금한 채로 넘길 수 밖에 없겠다.(아시는 이 있으면 보충해 주었으면 한다)

다음은 당시 나의 일기.

 

88년 2월 1일

 

어제 오후 金鎭昱씨와 서울大 英顯室. 李恩成'씨 殯所에-

새파란 자녀를 보니 참으로 안된 생각. 부인도 아마 거짓말로만 생각될 것이다.

수술 중 心臟이 기능을 잃어 死亡했다니 그야말로 그리 섬겨도 한숨 사이에 가 버리는 生命이니-

冥福을 빌 뿐, 實力있는 作家에 속했는데 -

南无 阿彌陀佛.

서울大 병원 영현실이 그토록 초라하고 추할 줄 몰랐다.

金瑚英씨를 비롯 몇 몇을 만났다. 李熹雨씨랑 金恒明씨랑 애쓰고 있었다.

「執念」의 金茂生 숙연히 나타났고...

* * *

고인은 이 무렵 생활도 넉넉해져 운전기사가 딸린 자가용도 굴리고 있었다. 신사동이던가? 역촌동이던가 단독주택도 마련하여 우리 화요회 멤버들을 초청하여 융숭한 대접을 하기도 했는데 뜻밖에 타계하여 새파란 자녀와 부인을 남기고 초라한 영안실에 누워 있으니 영혼인들 얼마나 한스러웠으랴.

명복을 빈다.

 

연보

 

李恩成 性(1937 ~ 1988)

1937년 경북 예천 출생.

1966년 공보처 주최 시나리오공모 「칼 맑스의 제자들」당선.

1967년동아일보 신춘문예 시나리오 「녹쓴 線」당선.

1972년「대원군」(MBC-TV)

1973년 「名人百選」(KBS-TV)「세종대왕」(KBS-TV)

1974년 「강감찬」((MBC-TV)

1975년「충의」(KBS-TV)

1976년「예성강」(MBC-TV) 「집념」(MBC-TV)

1977년「巨商 임상옥」(MBC-TV)「해룡 물에서 바다로」「집념」

1978년「소나기」(MBC-TV)

1979년「땅과 하늘 사이」(TBC-TV)

1980년「의친왕」(MBC-TV)

1981년「등신불」(KBS-TV)

1983년「광대가」(MBC-TV) 「고산자 김정호」(MBC-TV)

1984년 「토정 이지함」(MBC-TV) 「동리 신재효」(MBC-TV) 「개국」(KBS-TV)

1985년 「정선 아라리」(KBS-TV)

1986년「여심」(KBS-TV)

1988년 1월 30일, 서울올림픽 기념특집극 「아리랑」 집필중 별세. 향년 51세.

1990년 「일요건강」에 연재하던 「소설 동의보감」을 미완인 채 상 중 하 3권으 로 간행,

※ 그 외 「독짓는 늙은이」「소망」「행복의 문」「사랑하는 사람들」등.

※ 어느 해던가 나의 "장마루 촌의 이발사"를 각색하겠다고 원작을 가져가 기에 어떤 시각에서 어떤 작품으로 再創作하는지 기대가 컸었는데 전쟁 장면 등 제작여건이 맞지 않는다고 성사되지 않았던 일이 못내 아쉽다.

 

     (끝)

 

김광섭

(168.♡.2.227) 05-06-24 09:41

 

이은성씨. 자타가 공인하는 대가였습니다. 뜨는 듯 감은 듯 눈을 지긋이 감고 작가실에서 원고를 쓰시던 고인의 모습이 완연합니다. 해마다 연하장 주고 받는 게 고작이었던 세교였지만 박서림 선생의 회고담을 보니 더더욱 그리움이 쌓입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박서림

(61.♡.212.161) 05-06-24 19:33

 

감사합니다.

곧은 나무는 쓰이기 위해 用材로서 먼저 잘린다는 말이 있죠.

건필을 빕니다 .

 

조수연

(218.♡.215.247) 05-07-01 09:50

 

박서림 선생님 연재 참 좋습니다. 만인보처럼...더 많은 사람들을 오래오래 그려주세요..^^

 

박서림

(61.♡.212.161) 05-07-01 19:11

 

격려 고맙습니다,

건필을 빕니다.

 

이경은

(221.♡.55.147) 05-07-04 15:59

 

선생님을 통해서 한 사람의 작가와 인생을 다시 들여다볼 수 있어서 참 좋습니다.

때론 슬프기도 하고 동병상련의 아픔도 느껴지고, 같은 세포를 가진 사람들의 행복감도 맛볼 수 있네요.

잃어버린 사람들을 다시 만난 것 같기도 하고요.

얼굴은 뵌 적이 없지만, 언젠가 만나 뵈면 인사 드리겠습니다.

계속 좋은 글 연재해 주십시요.

 

박서림

(61.♡.212.161) 05-07-04 19:51

 

이경은씨

관심을 가져줘서 고맙습니다.

수첩을 보니 주로 라디오 쪽인 모양이죠?

건필을 빕니다.

 

박신호

(59.♡.61.107) 05-07-09 00:45

 

이은성이라고 해도 될 겁니다. 저만 아는 얘기도 있지만 쓰진 않겠습니다. 다만 벌써 고인이 된 친구가 적지 않다는 게 마음을 무겁게 합니다. 은성아, 미안하다.

 

박서림

(61.♡.212.161) 05-07-09 03:44

 

어? 언제 올렸어요?

오늘 새벽이네?

고맙습니다. 이렇게 관심을 가져주셔서..

아는 얘기 써 주세요. 고인의 명예를 심히 훼손하지 않는 거라면....

親友로서 자료로 남길 의무가 있다고 보는데 ....

건필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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